2024년 5학년 농적삶 5일차(10월 18일)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4-10-20 10:36
조회
35
10월 18일.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다. 짐을 정리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평소처럼 6시가 좀 넘은 시간에 깨웠다. 밖에서 부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몸이 이곳 흐름에 익었나 보다. 밤 10~11시경 잠이 들었다가 아침 6시 즈음 깨는 흐름.  몸에 리듬감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정한 리듬은 안정감을 준다.

(읽으시면서 참 좋다... 싶으신 부모님께서는 협업농장으로 일정 기간 보내보시는 것도... 저도 와서 좀 지내고 싶지만 묶인 몸이라...)

아침부터 갑작스러운 손님이 왔다. 예보에 없던 비. 오늘은 노지에서 쪽파를 심는 일정이 있다고 했었는데. 비는 맞아도 괜찮을 만큼 적당히 내리지 않았다. 우리를 데리러 오신 정영환 선생님도 난감해 하셨다. 그래도 일단은 이동. 장소는 라라라 채소밭. 우리는 협업농장을 비롯해서 풀무농장, 행복농장, 그물코농장 등 주변 여러 농장들을 돌면서 일하고 있는데 라라라 채소밭도 그 중 하나였다. 라라라는 정영환 선생님 아내가 운영하는 곳. 아니, 일구는 곳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라라라'라는 이름은 선생님네 세 딸을 뜻한다고 한다. (이름에 '라'가 모두 들어 있다.)

이동 중 갑자기 한 학생이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내가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있는 거 얘기를 했던가, 라는. 아, 맞다. 먹고 남은 게 더 있었지. 나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바빠서 잊었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채소밭에 도착했다. 채소밭은 정영환 선생님 댁 바로 옆 그리고 위에 있었다. 선생님의 아내 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포동이도. 포동이는 강아지다. 음... 아주 큰 강아지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람을 가린다고 하는데 우리한테는 짖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고 매달렸다. 학생들도 개를, 아니 그 큰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던 비가 잠깐 멈추는 듯했다. 그 틈에 모두들 밭 일을 하려고 나섰는데 좀 있다가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농부에게 반가운 손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가신 손님이기도 하다. 결국 비닐하우스 쪽 일을 하는 걸로 바꿨다.

쪽파를 심고, 쌈채소를 재배하고, 밭을 갈고... 밖에서 비는 쏟아졌지만 일은 계속 됐다. 학생들은 손도 부지런히 놀렸지만 입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들, 농담들이 오고 갔다. 손으로는 농사를 짓지만 입으로도 농사를 짓는다. 입으로 짓는 농사는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농사다. 서로 말이 오가면서 생각이 나눠지고 그 와중에 서로에게 없었던 생각의 씨앗들이 심어지기도 한다.

점심식사는 닭개장. 딱 점심 때 닭개장만 하는 식당이었는데 학생들이 맛있다는 소리들을 하면서 나오는 게 들렸다. (한 가지에 매진하신 사장님의 내공일 것이다.) 돌아오는 대로 일을 또 하다가 들어와서 잠깐 쉬는데 거실에 누워 얼굴을 옷으로 뒤집어 쓴 누군가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렇게 잠깐 사이에 잠이 들다니. 뭔가 무거운 것을 나른 건 아니었어도 반복되는 일들에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잠깐 자는 쪽잠이라도 피로는 풀어줄 거다.

어느덧 일을 마칠 때가 됐다. 우리는 차를 타고 새로운 숙소인 오누이예절교육관으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씻고, 잠깐 쉬고. 조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커먼즈란 무엇인가>라는 강의 때문이었다. 우리는 책을 옆에 하나씩 끼고 워케이션 센터로 이동했다. 강의 시작 시간이 되면서 하나둘 모이더니 그 공간이 모두 찼다. 우리는 책의 초반부를 읽어둔 덕분에 커먼즈에 대한 개념은 대략이나마, 희미하게나마 잡혀 있었다. 강의에서는 이미 책의 중반부를 건너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러 예시를 들어서 설명했기에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숙소에 돌아온 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커먼즈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 커먼즈 자체가 정해진 역할이 없다. 그 안에서 직책을 나누는 순간 커먼즈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깨지는 것 같다. 커먼즈의 핵심 중 하나는 정해지지 않은 역할의 분담이 아닐까 싶다.

- 이걸 이번 시간에 얻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건성으로 어떤 일에 임하는 사람이 있다면 커먼즈는 지속되기 힘들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이기는 한데.

- 커먼즈가 실현되기는 아주 어려울 것 같다. 완벽한...? 실행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소유라는 것과 공유... 그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 애매한 것도 있고 요즘 개인주의가 심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되게 공동체 의식이 강해야 할 것 같다.

- 앞에서 나왔던 얘기인데 이상적인 커먼즈는 힘들다기보다는 불가능할 것 같다. 책에서도 나온 것 같은데 사람들이 모이면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커먼즈가 이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빼거나 다 가려서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커먼즈가 아니고. 그래서 어렵다.

 

커먼즈는 '공유'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으나 완벽하지는 않다. 이미 공유의 개념은 커먼즈(commons)보다는 쉐어링(sharing)에 가깝다. 가령 공유 자전거라고 했을 때 그것을 커먼즈라고 할 수 있는가. 사실 할 수가 없다.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의 경계가 명확하며 돈을 지불해야 사용할 수 있다. 무상이어야 하느냐 마느냐 차원의 접근이 아니다. 화폐를 통해서만 '공유'가 가능하다면 화폐가 없는 이들은 그 테두리 밖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공유 자전거가 커먼즈가 되려면 누구든 자전거의 주인인 동시에 손님이어야 한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수리해주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원래 위치로 옮겨주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이 누군가들이 자발적으로 이 자전거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신경을 쓰고 함께 관리하는. 아마 이런 '이상적인' 형태가 커먼즈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행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루닫기를 할 때 학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오늘까지 4일 동안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는지.

 

- 농사는 산길 같다. 분명 10분 있으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고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다. 어느새 보면 도착해 있다. 정상에 도착하면(끝나면) 성취감도 있다.

- 농사가 겉으로 보기에는 할 일이 없어도 할 일이 계속 생기는 게 물통형 냉온수기에서 물이 다 빠진 것처럼 보여도 계속 나오는 모양과 비슷하다.

- 농사는 성지순례다. 멀고도 험한데 진정한 마음으로 따르면 뭔가 얻게 된다.

- 농사는 양파다. 까도 까도 할 게 나온다.

 

그래도 4일 동안 농사 지은 게 좀 깊이 들어갔나 보다. 저런 비유들이 나오다니. 우리가 먹을 것들을 심고 키우는 일인데 아무렴.

 

내일은 드디어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다. 주말 동안은 9시에 깨우기로 했다. 매일 일찍 일어난 터라 꿀 같을 거다.

 



포동이



쪽파 심기





새로운 숙소인 오누이 예절교육관



마침 생일자가 있었다! 정영환 선생님이 챙겨주신 케이크! (생일자가 토핑(멜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그 외의 것들을 먹을 수 있도록 우리가 많이 도와주었다.)
전체 3

  • 2024-10-21 14:09

    생일자 아닌 사람들이 계 탔네요! ㅋㅋ


    • 2024-10-21 19:48

      네, 저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ㅎㅎ


  • 2024-10-22 19:13

    ㅎㅎ 농사에 대한 답이 재밌네요^^